ひな祭り

 

3월 3일은 히나마츠리. 간단하게는 일본의 ‘여자어린아이의날’ 쯤 되겠다. 5월 5일은 남자어린아이의 날. (왜 굿이 둘로 놔눴는지-_-;;;) 히나마츠리때는 시로자케(白酒)라는 술과 단 과자들을 먹는데… 시로자케는 한국 식혜랑 거의 동일하다. 따뜻하때 먹는 거라고 하는데.. 이름은 술인데 실제 알콜기는 전혀 없는, 진짜 식혜랑 똑같다. (아…얼음 동동 띄운 찬 식혜가 먹고 싶어ㅠㅠ)

학교에서 히나마츠리라고 인형들도 장식해 놓고, 종이접기도 하고, 시로자케도 마시고 하는 행사가 있었다.

시로자케 사진이 없군-_-;;;;; 아래는 히나마츠리에 대한 설명

히나마쯔리(ひなまつり)의 유래와 의미

히나마쯔리는 3월3일에 여자아이의 성장과 행복을 기원하는 행사로, 모모노셋쿠(桃の節句)라고도 한다. 그 기원은 고대 중국에서 3월에 막 태어난 여자아이가 3일 후에 죽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술을 준비하고 강으로 떠내려보냈다는 고사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3월3일 물의 축제이고, 이 날에는 사람들이 물가로 나와 몸에 붙은 병이나 재앙을 없애는 행사를 가졌다.

이러한 행사가 일본에 전해져 고대 일본에서는 신상에 일어날 수 있는 불결한 일이나 재난등을 인형에 옮겨, 흐르는 강물에 떠내려보내면서 액막이를 했는데 이를 히나나가시(ひな流し)라고 하였고 , 이러한 풍습은 일본의 각지에 전해져 그 모습이 남아 있는데, 아와시마 신사에서는 3월3일 전국에서 봉납된 인형을 배에 실어 바다로 떠내려보낸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 여자아이들의 인형놀이와 결부되었고 ,오늘날과 같이 히나인형을 장식하고 여자아이의 무병과 행복을 기원하는 큰 축제로서 확립하게 된 것은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7)이후의 일이다. 궁정의 여성들 사이에서 성대하게 행해졌다고 한다. 이 행사가 궁정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서민 사이에 보급되면서 현대와 같은 히나마쯔리의 형태가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일반서민이 히나인형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明治시대 말경부터이다.

히나인형(ひな人形)의 기원과 의미

헤이안시대에는 귀족여성사이에서 종이 인형에 옷을 입혀서 <히이나놀이(ひいな遊び)>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이 에도 시대에 그 형태가 정리,정착되어 히나마쯔리때에 히나 인형을 장식하게 되었다.

히나마쯔리에 히나인형을 장식하는 것은 여자아이가 예쁘게 성장하고 커서 좋은 인연을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바램과 인형에 좋지 않은 재난이나 재앙등을 옮겨 그것들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그래서 3월3일이 지나면 바로 치우는 것이 관습으로 되어 있다.

여자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맞는 3월3일에 장식해 두었던 인형은 소중히 보관해 두었다가, 매년 히나마쯔리에 장식하면서 여자아이가 매년 건강하고 튼튼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축하한다.

히나인형 장식하기

히나단상은 1단,2단,3단,5단,7단까지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다. 제대로 인형을 구성한다면 모두 15개가 된다. 하지만, 暄횬?좁은 관계로 공간에 맞게 1단만 장식하는 경우도 있다. 최고 윗단에는 한 쌍의 남녀히나인형을 놓고 그 양쪽에 옆의 그림처럼 등롱을 놓고 그 뒤에는 병풍을 친다. 가장 윗단의 남자히나인형을 오다이리사마(お內裏さま), 여자히나인형을 오히메사마(お姬さま)라고 한다.

히나마쯔리 지내기

히나인형은 히나마쯔리 10-20일정도 전의 *大安의 날에 장식하는 것이 적당하다. 그리고 3월3일 당일이나 그 전날 저녁에 아기의 할아버지, 할머니, 친척, 친구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한다. 이 때 먹는 음식에는 생선초밥과 대합장국, 시로자케(白酒), 히시아라레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인>